“무늬만 프리랜서” 고용, 이제 그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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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들 모여 ‘할말 잇 수다’ 증언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2월 1일 ‘할말 잇 수다’ 증언대회에 모여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함으로 인해 겪는 문제들을 토로했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com)    


회사로 출퇴근하며 일했지만 당신은 근로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5분 이상 업무가 지체되면 “자리에 계신가요?”라고 바로 연락이 오지만 역시 당신은 근로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고용보험료 꼬박꼬박 냈는데 당신은 근로자가 아니어서 육아휴직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면?
 

다소 황당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노동자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지난 2월 1일 플랫폼노동희망찾기와 할말 잇 수다 기획단에서 주최한 ‘할말 잇 수다’ 증언대회에선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가 마주하고 있는 여러 문제가 쏟아졌다.
 
증언대회 1부에선 방송 프리랜서, 영화산업 노동자, 콘텐츠 모더레이터(콘텐츠 플랫폼에서 유해하거나 불법적인 내용을 골라 차단·삭제하는 일하는 사람)가, 2부에선 방문점검원,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기사,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가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근로자’처럼 일하는 “무늬만 프리랜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는 플랫폼·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권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여러 문제를 겪는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은 정말 ‘근로자’의 노동과 다른걸까? ‘할말 잇 수다’ 증언대회에 나온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이 정말 ‘프리랜서로서의’ 노동인지 의문을 표했다.
 
9년차 콘텐츠 모더레이터 정혜선(가명) 씨는 자신을 “무늬만 프리랜서”라 설명했다. 프리랜서 도급 업무 계약을 맺고 포털 사이트 게시글과 댓글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15분 이상 글이 밀리면 메신저로 연락이 온다”는 것. 자리에 있는지 수시로 통제를 당하는 거다.
 
4년차 콘텐츠 모더레이터 김지윤(가명) 씨도 말을 보탰다. “일반적인 노동자와 똑같이 정해진 시간에 업무 시작/종료하고, 정해진 지침을 기준으로 지시와 통제 아래 일하고, 그날그날 업무 사항 보고하고 확인 받으며 일하고 있지만, 근로계약서가 아닌 도급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또, 방송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의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실제로는 방송사의 지휘 감독 하에 일하면서도 프리랜서 계약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무늬만 프리랜서”인 거다.

2024년 1월 18일, ubc울산방송 앞에서 “이산하 아나운서 부당 전보 철회하고 노동자성을 온전히 인정하라!”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엔딩크레딧    


 
이들의 노동자성은 이미 여러 경로로 확인되고 있다. “갑작스런 계약해지 후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거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진행해, 노동자성을 인정 받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방송사들이 온갖 꼼수로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노동자성이 인정되었지만, 현실에선 심각한 괴롭힘과 보복 갑질을 당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일례로, “ubc울산방송의 이산하 아나운서는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와 행정 소송에서도 노동자성이 인정되었지만, 방송국은 3년째 단시간 노동 강요, (맡고 있던) 프로그램 폐지, 아나운서인데 편집요원으로 부당 전보하며 괴롭히고 있다.”고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밝혔다.
 
보험료는 두 배로 내고, 보장은 반도 안 돼
 
어떤 계약을 했느냐는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 환경과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구교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 지부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된 후로 배달업 노동에게도 휴게실 마련, 안전장비 지급, 감정노동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점들이 적용될 수 있게 됐지만, 이는 ‘근로자’ 배달원에만 한정된다”고 짚었다.
 
“현재 한국의 배달노동자 산재보험 가입자가 약 37만 명인데, 그 중 근로자 배달원은 아주 소수로 대부분은 플랫폼 노동자라는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배달노동자는 해당 사항이 없는 것이다.
 

2022년 4월 14일, “LG전자 케어솔루션 매니저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 모습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    


2022년 1월부터 플랫폼 종사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지만, 이 부분도 ‘근로자’와 차이가 있다. 구교현 지부장은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는 있다고 하지만, 받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배달노동자에겐) 해고라는 게 초 단위로 벌어지는데, 고용노동부 기준에서 봤을 땐 이게 해고 기준에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출산전후 급여는 받을 수 있지만 육아휴직 급여는 없다. 거기다 직장 가입자가 아니라 지역 가입자라, 비슷한 소득을 버는 근로자에 비해 2배 가량의 보험료를 낸다. 구 지부장은 “보험료는 2배로 내고, 보장은 반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도 마찬가지다. 렌탈 가전 방문점검을 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설명한 김정원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 지회장은 “LG케어솔루션 매니저들은 특수고용 노동자”이며, 그렇기에 늘 “고용불안”에 시달린다고 했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건 더 어렵다. “일하다 다쳐도 충분히 쉬지 못하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 일하다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업무 해약을 하는 일들이 많다”는 게 김 지회장 설명이다.
 
콘텐츠 모더레이터 정혜선(가명) 씨는 “모니터링 하다 글 밀릴까 두려워서 화장실 가는 일을 참았다가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할 상황까지 놓였었다”고 토로했다. “의사가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했는데, 제가 뭐라고 답했는지 아세요? ‘중환자실 가서 노트북 사용해도 되나요?’였어요.” 모니터링이 밀렸을 때 해고 압박도 받았던 터라, 아파도 쉴 수 없는 노동환경인 것이다.
 
우리도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할말 잇 수다’ 증언대회 참여자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건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근로기준법, 혼자가 아니라 함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라고 입을 모았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조 조합원은 “그동안 꾸준한 활동을 통해, 2015년부터 영화 현장의 표준근로계약서 및 근로기준법 적용이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었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고 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극장 산업이 위축되고 영화 제작 편수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영화제작 인력 및 인프라가 새로운 플랫폼인 OTT 혹은 방송 현장으로 이동하게 됐다. 그러자 ‘표준근로계약서’ 통용이 슬그머니 사라졌다는 것.
 
“(OTT는) 영화제작 현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표준근로계약서’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근로기준법 적용도 안 하고 있다. 최근 방송 및 OTT 현장의 계약은 업무위탁계약서, 위임계약서, 용역계약서 등 다양한 형태의 사업자계약서가 사용되고 있다.”

2월 1일 서울 전태일기념관에서 ‘할말 잇 수다’ 증언대회가 열렸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와 할말 잇 수다 기획단이 주최한 자리로, 참여자들이 각자의 말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일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다시 장시간 노동, 안전하지 않은 노동 환경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 더불어 진재연 엔딩크레딧 집행위원장은 “소위 ‘스타배우’의 출연료가 (드라마) 회당 억대인 것에 반해 단역 배우 및 제작진 급여가 최저임금 수준에서 결정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도 함께 짚었다.
 

콘텐츠 모더레이터 김지윤(가명) 씨도 “3개월 단기간으로 반복되는 재계약 구조”로 인해, 장시간 노동, 휴일 노동, 최저시급 노동, 초과노동 고충을 겪으면서도 “어떤 불만을 이야기하기도 어렵다”며 근로기준계약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다른 콘텐츠 모더레이터 김민정(가명) 씨는 “일 특성상 많은 양의 욕설과 모자이크 되어 있지 않은 잔혹한 사건의 영상, 이미지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며 “특히 최근의 신림역 살인사건 CCTV 영상은, 몇 날 며칠 계속 떠올랐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건 “내가 일함으로써 다른 누군가는 편안하게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내가 이 일을 지치지 않고 할 수 있게끔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다”고 목소리 높였다.
 
노동조합의 역할과 필요성도 강조됐다. 이창배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교육국장은 “(어떤 부당함에 대해) 대리기사 개인이 플랫폼 업체에 항의했을 땐, 업체가 기사에게 제재 수단을 가하려고 하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하지만, 노동조합에서 연락해 문제를 제기했을 땐 상황이 달라진다. 그래서 해결한 사안이 여러 건 있다”고 했다.
 
김정원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 지회장 또한 안전하게 일할 권리, ‘작업중지권’을 위해 단체협약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된 것 중 하나가 “매니저가 가정 방문 전 ‘반려동물을 분리해 달라’고 (회사에서) 문자를 넣는 일”이다. 처음엔 “'여러분의 소중한 반려견이 기계 작동 소리로 인해 놀랄 수 있으니 분리해 주시라'고 안내가 나갔”지만, 이 또한 노동자의 안전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요구해 “‘매니저들의 안전한 작업을 위해 반려동물을 분리해 달라’는 안내로 변경”됐다. 이런 변화는 노동조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참여자들은 △최저·생활·적정 임금 보장 △부당한 계약해지·계정정지 제한 △쉴 권리, 유급 휴가 보장 △작업중지권 보장,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법 전면 적용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함께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