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예산 삭감에…이공계 석사 "월급 반토막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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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정부지원 대폭 줄어…대학원생 '직격탄'

서울대 315억·KAIST 349억 등
연구비 줄어들자 임금부터 깎아
"학비·자취방 월세 내기도 빠듯
연구 끝나고 야간알바 해야할판"

대학원, 신입 석사생 정원도 감축
"인재 해외유출·경쟁력 저하 우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유명 공과대학에서 로봇공학 석사 과정 중인 대학원생 A씨(28)는 지난달 말 작년(220만원) 대비 반토막 난 12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자취방 월세(50만원), 학비 저축(월 70만원)을 하고 나니 생활비도 남지 않았다. A씨는 요즘 야간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다.

인공지능(AI) 분야 박사 과정인 B씨(29) 역시 월급이 올해부터 절반(150만원)으로 줄었다. B씨는 “연구에 뜻이 있어 사기업 취업을 포기했지만, 열악한 처우와 연구 환경으로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공계 대학원생 임금 ‘반토막’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후폭풍이 연초부터 이공계 대학원을 덮치고 있다.

12일 대학원생노조에 따르면 예산 집계가 완료된 2022년 대비 올해의 R&D 예산 삭감액은 서울대 315억원, KAIST 349억원이었다. 포스텍(포항공대)은 57억원, 연세대 90억원, 고려대 105억원, 성균관대 159억원, 한양대는 121억원 줄었다. 정부가 2024년도 R&D 예산을 전년 대비 4조6000억원 삭감한 데 따른 결과다.

예산 삭감은 신규 과제 축소뿐 아니라 기존에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 연구비 삭감으로 이어졌다. 한 공과대학 로봇공학 랩실은 작년부터 8년간 매년 3억원의 연구비를 지급하는 과제를 시작했지만, 2년 차인 올해부터 연 1억8000만원으로 줄었다. 랩실 소속 석사생은 “연구비 삭감에 따른 성과지표 재조정 과정을 거치지만 형식적이고 당장 재료비와 임금부터 삭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제 성과 수정 비중에 따라 연구비 삭감 규모가 달라지지만, 대학원생을 고려해 대다수 교수가 대폭 줄이지 못하고 있다. 한 대학 공대 학장은 “일부 과제는 성과지표 유지 시 연구비 40% 삭감, 성과지표 수정 시 연구비 60~70% 삭감 옵션을 제시하기도 한다”며 “학생들을 걱정하는 교수들은 연구비가 덜 삭감되기를 바라지만 교수들도 진퇴양난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석·박사 과정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프로젝트 예산 축소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영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수석부지부장은 “대학원생의 임금은 국가연구개발과제와 사기업 과제에 대부분을 의존하기 때문에 R&D 예산 삭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재 해외 유출 가속화할라
공대 교수들도 비상이 걸렸다. 주요 대학 공대 교수들은 신입 석사생 모집 정원 감축부터 고민하는 처지다. 서울 주요 대학 공대 교수는 “주변 교수들이 석사생 2명 뽑을 것을 1명으로, 4명 뽑을 것을 2명으로 줄이려는 분위기”라며 “연구비가 줄어 랩실을 현재 규모로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척박해진 연구 환경으로 인한 해외로의 두뇌 유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감소하던 이공계 대학원 유학생은 2022년 전년 대비 852명 늘어난 9392명을 기록하는 등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당장 대학원의 연구 역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공학과 교수는 “연구의 연속성이 매우 중요한데 한 번 중단된 연구는 재기하려면 준비 기간에만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고등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대학원 경쟁력 저하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대두된다. 홍유석 서울대 공대 학장은 “다른 나라는 R&D 투자액의 ‘증가율’만 떨어져도 문제인데, 우리나라는 아예 대폭 삭감해버렸다”며 “의대 정원 확대 기조까지 겹치면서 이공계열 석·박사생들의 사기가 크게 저하됐지만, 학생들에게 그저 ‘견디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