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은 보기보다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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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풍경동물]
보기만 해도 귀엽고, 보기만 해도 무서워. 너를 향한 사람들의 오해는 대단해. 너는 영웅이었다가 친구였다가 괴물이 되곤 하지. 방금 내가 먹은 빵은 곰이 그려진 접시에 담겨 있었어. 그림 아래 해피 베어, 하티 베어, 큐티 베어라 쓰여 있더군. 행복하고 따뜻하고 귀여운 곰은 이해일까, 오해일까. 2018년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곰은 참 만만해 보인다. ‘곰처럼’이라고 운을 떼면, ‘굼뜨고’와 ‘미련하게’가 줄줄 따라온다. 단군신화에서도 용맹하지만 참을성 없던 호랑이와 달리, 곰은 둔하지만 끈기 있게 마늘과 쑥을 견뎌 사람이 됐다. 그래서일까. 곰에겐 착각이 붙어 있다. 뭔가 어리석지만 믿음직하고 착한 녀석이라는.

한번쯤 이런 상상도 해봤을 것이다. ‘만약 산이나 들에서 곰과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죽은 척해야 한다는 오래된 답이 있고, 나무에 오르라는 답도 있다. 곰보다 빨리, 또는 지그재그로 뛰거나, 급소를 먼저 가격한 뒤 달아나라는 엉뚱한 답도 있다. 그럴싸하지도 않다. 정답은, 죽었다고 보면 된다. 당신은 죽은 척해도 죽고, 살아 날뛰어도 죽으며, 나무에 올라도 죽는다. 곰은 우사인 볼트보다 두 배 빠르고, 마이크 타이슨의 핵주먹 따위 간지럽지도 않으며, 타고난 나무타기 선수다. 농담과 진담 사이의 조언은 이렇다.

“곰을 발견했을 때 손톱 크기로 보일 만큼 멀리 있다면, 안심해도 좋습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곰은 당신 앞에 와 있을 테니까요.”

곰은 동화 속에서나 귀엽고, 동물원 안에 있을 때나 가까스로 안전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곰을 참 좋아한다. 알기에 좋아하는 걸까, 모르기에 좋아하는 걸까.

1952년 일본에서 태어난 호시노 미치오는 스무 살 무렵 우연히 알래스카의 자연이 담긴 사진집을 보고 마음을 빼앗겼다. 마을 촌장에게 진심 담은 편지를 썼고, 초대받아 그곳에 석 달을 머물며 삶의 이정표를 새로 썼다. 사진을 배웠고 야생동물의 삶과 터전에 대해 공부했다. 알래스카의 풍경과 사람과 동물을 담은 사진과 글은 유수의 잡지에 실렸고, 책으로 출간됐다. 1986년 생태전문잡지 <아니마>에 기고한 <그리즐리>는 회색불곰에 관한 생태보고서로 찬사받았고, ‘곰사랑’을 이어가는 발판이 됐다. 하지만 외사랑이었다. 1996년 캄차카반도에서 취재 중 곰에 물려 사망한다. 알래스카와 이웃한 그곳은 ‘사람보다 곰이 많다’고 할 만큼 곰들의 낙원이었다.

1957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티머시 트레드웰은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뒤 알래스카에 갔다가 야생곰과 마주쳤다. 삶이 뒤흔들린 순간이었다. 곰을 위해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13년 동안 알래스카를 드나들며 친구 되기를 시도한다. 미친 짓이라는 비난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곰에 다가서고, 알몸으로 수영하며 “곰아 사랑해, 널 위해 죽을 수도 있어!”라고 외쳤다. 말귀를 알아들은 걸까. 2003년 곰에 물려 죽었다. 총도 없었다. 곰사냥꾼이 되느니 곰사랑꾼이 되겠다던 사람이었다. 그의 삶과 죽음은 다큐멘터리영화 <그리즐리 맨>에 담겼다.

조심성 많던 생태전문가 호시노 미치오도, 맹목적 곰사랑꾼 트레드웰도 그리즐리에겐 그저 사람이었다. 사람에게 곰도, 곰에게 사람도, 피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피할 수 있었다면 살았으리라, 곰을 사랑했던 사람도, 사람을 먹어 살려둘 수 없었던 곰도.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