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날 한시 떠난 네덜란드 전 총리 부부…'안락사 논의'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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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병원 중환자실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연합뉴스


드리스 판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가 자택에서 부인과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0일(현지 시간) 판아흐트 전 총리가 지난 5일 자택에서 부인 외제니 여사와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판아흐트 전 총리가 생전에 설립한 '권리포럼' 연구소는 지난주 판아흐트 부부가 "함께 손을 잡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판아흐트 전 총리는 1977~1982년 네덜란드 총리를 지냈으며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70년간 함께 산 93세 동갑내기 아내를 항상 '내 여인'이라고 부르는 등 애정을 드러냈다고 전해진다.

'세기의 배우' 알랭 들롱도 스위스서 안락사 결정


안락사(euthanasia)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Euthanatos'에서 유래한 말로 '편안한 죽음', '행복한 죽음'을 의미한다. 노령이나 신체적인 장애 혹은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주위의 도움을 받아 죽음에 이르는 행위를 말한다.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 조력자살,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적극적 안락사는 약물 등을 사용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고, 소극적 안락사는 연명치료를 중단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중 연명치료 중지에서 의사의 조력자살까지를 존엄사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2022년에는 뇌졸중 수술을 받은 프랑스의 국민배우 알랭 들롱이 향후 건강이 악화하면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와 주목 받았다. 안락사는 한국에선 불법이지만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일부 국가에선 허용하고 있다. 스위스는 외국인에게도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다. 스위스 조력사망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 수는 약 300명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1977∼1982년 네덜란드 총리를 지낸 드리스 판아흐트(중앙)의 생전 모습. 사진=EPA·연합뉴스


네덜란드는 2002년 4월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현재 불치병을 앓는 만 12세 이상에 대해 안락사를 허용했다. 12~16세 사이 어린이도 부모 동의를 받아 안락사가 가능했다. 하지만 12세 이상으로 규정된 안락사 연령 제한을 낮춰달라는 의료계 요청에 따라 지난해 안락사 허용 연령을 만 12세 미만 어린이로 확대하기로 했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를 승인받기 위해선 환자가 본인의 의지로 신청해야 하고 견디기 어려운 지속적인 고통이 수반되고, 최소한 의사 2명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등 6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네덜란드 정부 집계에 따르면 2022년 시행된 안락사는 8700여 건이었으며, 12∼16세 사이 어린이 안락사 사례는 1건이다. 판아흐트 전 총리 부부처럼 동반 안락사는 안락사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지만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동반 안락사 사례가 보고된 2020년 26명(13쌍)이 동반자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이듬해에는 32명(16쌍), 2022년에는 58명(29쌍)이 동반 안락사를 택했다.

국민 10명 중 8명 '찬성', 5년새 1.5배 증가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이 확실시 되는 한국에서도 품위 있는 죽음,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3.6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길다.

국내에서도 안락사 법적 허용을 찬성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교수팀이 2022년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 또는 의사 조력자살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76.3%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국민 절반 정도(50%)가 안락사를 찬성한 데 비해 1.5배 높아진 수치다.

국내에선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 시행으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를 받아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은 가능하다. 현행법상 안락사와 의사 조력자살 모두 한국에선 불법이다.

2022년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내 최초로 조력존엄사법(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주목 받았다. 당시 한국리서치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력존엄사법의 입법에 대한 찬반의견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1%가 찬성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