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자전거 덕후', 대만을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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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남부 자전거 여행기] 접이식 자전거로 일주일간의 야영 여행에 나서다
'츠상'의 기차역 앞. 건물 분위기가 중국과 일본을 섞은 느낌이다. 대만의 역사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은 역들을 지날 때면 근대 소설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나는 '자덕'이다. 자전거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는 사람을 속칭 자덕(자전거 덕후)이라고 한다. 겨울은 자전거를 탈 수 없으니 심히 고통스러운 계절이다. 자전거에도 겨울 농사가 있다. 이 겨울 농사를 잘 짓지 못하면 봄이 되어 더 괴롭다.

긴 겨울 지나고 봄에 안장에 앉으면 타이어가 바닥에 쩍쩍 달라붙은 듯 앞으로 나가지 않고, 다리가 무겁고 숨이 가빠 앞사람 따라가기가 힘들어진다. 몸에 이상이 있나? 의심하고 급기야는 자전거를 더 좋은 상급으로 바꿔야 하나 싶기도 해서 남편 몰래 최신 모델 검색에 들어가기도 한다. 결국 그 지경까지 안 가기 위해 아카데미에 등록하거나 실내 롤러 위에 자전거를 올려놓고 돌리며 게으름을 이겨보려고 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일찌감치 겨울에도 따뜻한 나라 대만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연말 9일간의 휴가를 전지훈련으로 사용할 것이다. 자전거 동호회 후배인 윤희가 동행했다. 그녀는 외국에서 자전거를 타는 게 처음이다. 잔뜩 기대하고 흥분하며 내가 알려주는 장비 목록을 철저히 준비하는 열성을 보였다.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어깨에 메는 배낭 사용을 꺼린다. 무게를 어깨에 메고 여행하는 것보다는 자전거에 짐을 싣는 형태를 선호한다. 하지만 내 선택은 배낭이다. 접이식 자전거를 이용하며 중간중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행기 이동 시 포장과 돌발적인 상황이 많은 외국에서 간편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접이식 자전거와 배낭, 간단한 짐받이만으로 구성했다. 하루 종일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묻는 동호인들도 많지만 내 몸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좋은 배낭을 제대로 갖추면 무게 분산이 잘되기에 그리 힘들지 않다.

자전거 여행자는 도로 환경에 민감한데, 대만은 매우 깨끗하고 안전하다. 오토바이도 신호를 잘 지키고 모든 안전수칙을 지키고 있었다. 전철이나 대중교통에서 폭력을 쓰면 200만 원 벌금이라는 경고문도 붙어 있다.
대만 자전거여행은 보통 두 코스로 나뉜다. 고구마 모양의 섬나라 대만을 해안선 위주로 한 바퀴 돌 것인지, 중앙산맥의 타이루거협곡과 우링을 주 목표로 할 것이냐다. 가장 높은 곳은 해발 3,275m에 달하는 우링, 일월담, 아리산 등을 자전거로 넘고, 해안선도 달려보고 싶었다. 나름 야무지게 계획을 세워 타이베이 공항에 도착했다.

와우! 이럴 수가! 복권 당첨되어 본 적 없는 내가 이런 행운이라니! 대만관광청 이벤트로 공항에 도착하는 외국 여행객들에게 추첨을 해서 20만 원 상당의 선불카드를 주는데, 놀랍게도 내가 당첨됐다. 꽝이 나와도 실망하지 말자고 마음의 준비까지 했는데 말이다. 시작부터 두둑한 용돈을 받고 보니 대만의 하늘이 더 청명해 보인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대만의 2륜차 전용도로다. 스쿠터가 많은 나라여서 차선 하나가 통째로 2륜차에게 주어져 있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위한 도로다. 한국의 도로에서는 갖은 눈치와 구박 받으며 위험하게 자전거를 타야 했다.

자동차와 분리되어 편안히 라이딩을 하니 처음에는 영 거북하고 조심스러워 자꾸 길가 쪽으로 붙어서 달렸다. 그러다 익숙해지니 차선 하나와 갓길까지 널찍하게 사용하며 옆으로 대형 트럭이 지나가도 의젓하게 페달을 밟는다.

벤당'이라고 부르는 도시락. 기차 안에서 팔기도 한다.
타이베이에 도착해 곧바로 남동쪽 도시인 타이동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여기서 하룻밤 잔 후 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화롄쯤에서 중앙산맥의 타이루거로 진입할 계획이다. 대만의 겨울은 북동풍이 심하다. 우리에게는 맞바람. 그래도 3,200m 산악도로를 오를 때 뒷바람으로 가겠다는 전략으로 평지의 맞바람은 감수할 요량이다.

츠상이라는 지역은 쌀이 유명하다. 츠상 기차역 앞에서 이곳 쌀로 지은 밥에 반찬을 얹어 나무도시락에 담아 판다. 맛은 둘째로 하고 얇게 켠 나무도시락이 반가웠다. 어린 시절 외가에 갈 때 기차에서 먹던, 소풍갈 때 김밥을 담았던 그 도시락을 대만에서 만난 것이다.

들판에 볏짚 구조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자전거를 멈춰서 보니 지역 축제가 열리고 있다. 날도 저물기 시작했고 첫날이라 몸도 삐걱거리니 여기서 밴드 공연 좀 보다가 텐트를 치기로 했다. 오후 6시가 넘자 축제가 파했다. 벌판 한가운데 로컬제품 판매장도 문을 닫았다. 덕분에 건물을 둘러싼 나무데크가 우리 캠핑장이 되었다. 벽과 바람 차단막과 은은한 조명이 아늑하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 특성상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채비를 하고 달려야 한다. 아침식사는 가다가 만나는 마을에서 한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등 중국의 생활양식 영향이 큰 나라들은 아침식사를 밖에서 사 먹는 경우가 많다. 대만도 그러해서 아침 먹기가 매우 편리하다. 2,000~3,000원의 저렴한 가격에 간단한 요리 한 접시와 차를 마시며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길에서 만난 대만 자전거 동호인에게 우리의 여행 경로를 의논했다. 그는 위성지도와 종이지도를 길바닥에 놓고 현실적인 코스를 조언해 주었다. 원래 목표였던 우링 산악지대는 추석 무렵이 라이딩 적기이며, 지금은 눈과 빙판으로 진행이 어렵다고 했다.
대만 자덕들 권유로 경로 변경

둘째 날, 위리의 어느 편의점 앞에서 세 명의 대만 바이커를 만났다. 아무리 내가 계획을 잘 세워 왔어도 현지 바이커에게 점검을 받는 게 좋겠다 싶어 내가 생각한 코스를 말하며 합리적인지, 어디에서 방향을 꺾는 것이 최상인지 물었다.

대만 바이커는 난감한 표정부터 지었다. 어제 우링산에 눈이 왔다고 한다. 한겨울에도 우리나라 가을 날씨인 대만에 눈이라니… 응달쪽에는 눈이 얼어 있을 거란다. 한국의 겨울을 피해서 남쪽 나라로 왔는데 눈산, 얼음길을 갈 이유가 없다. 게다가 우리의 미니벨로는 오르막은 유리하지만 내리막은 취약하다. 빙판길은 더군다나 위험하다.

즉시 길바닥회의가 열렸다. 목표가 사라졌으니 굳이 맞바람을 견디며 북쪽으로 갈 이유가 없어졌다. 옆에 산을 하나 넘어 동해안으로 가서 남쪽으로 달려 대만의 땅끝을 찍고 절반환도를 하겠다고 하니 "매우 좋은 계획"이라며 추천한다.

내륙에서 산을 넘어 해안으로 들어섰다. 터널에서는 배낭커버의 반사띠가 안전장구로 작용한다.
거리와 날짜, 우리의 하루 진행 거리를 계산해서 지도에 중요 포인트를 표시해 주었다. 이들은 아침 라이딩을 포기하면서까지 우리를 도와주었다. 자전거를 다시 차에 싣고 돌아가는 그들에게서 국적을 초월한 바이커들의 진한 동지애를 선물로 받았다. 언젠가 그들이 한국에 왔을 때도 이런 환대와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타이완 콤KOM 챌린지(자전거활동 공유 어플에서 오르막 기록으로 순위를 정하는 게임, King of Mountain) 코스는 다음으로 미루고 동쪽 내륙에서 산을 넘어 해안으로 간다. 강원도 사람인 우리에게 500m도 안 되는 산은 언덕에 불과하다. 가뿐히 넘어 해안길에 내려선 후부터는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의 동력으로 자동 페달링이다.

해안을 따라 공원을 잘 꾸며 놓았지만 우리는 그저 먹고 달리고 먹고 달릴 뿐이다. 그야말로 주마간산走馬看山이다. 북동풍이 강하기에 해안의 파도를 바람이 쓸어 올려 부수어서 자잘한 물 입자가 내륙으로 올라가며 안개 낀 듯한 날씨를 만들었다. 나쁘지 않은 습도였다. 하루에 80km 이상을 달릴 목표이기에 적당한 습도와 온도, 뒷바람은 무거운 짐의 자전거를 바람처럼 달리게 만들어 주었다. 산길까지 포함해서 100km 넘게 달린 날도 있었다.

대만의 가장 보편적 음식인 우육면.
큰 마을 하나를 만나 마실 물을 사고, 1시간쯤 더 달려 야영할 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윤희가 많이 힘든 기색이다. 최근 체중이 5kg 넘게 늘었다고 하더니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이곳에서 숙소를 찾으면 어떻겠냐고 지친 얼굴로 묻는다. 여관이 있을까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내 머리 뒤에 트래블버그 호스텔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어제 만난 바이커들이 딱 한 곳 저렴하고 글로벌한 숙소로 소개해 준 도미토리였다. 친절한 도로와 멋진 풍광과 뒷바람을 서비스해 주는 대만인데 타이밍과 장소까지 기가 막히게 맞춰서 잠자리까지 제공해 준다. 여행 와서 잠시 눌러 앉은 듯한 벨기에 아가씨가 우리에게 한국 어느 도시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서울 외에 다른 도시도 알아요?" 물었더니 청주에서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첫날 지하철역에서 만난 친절한 소녀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며 자기 발음이 어떻냐고 물었었다. 우리가 외국에 나와 신기하고 즐거워하듯, 우리 일상 속 한국 풍경, 음식과 문화가 그들에게도 동경하는 코리아인가보다.

주민센터 옆 공공자전거 주차장에 텐트를 쳤다. 자전거에 둘러싸여 자고 일어났더니 집에서 잔 듯 당당한 기분이다.
대만의 땅끝으로 가는 길은 해안만 따라 가면 된다. 가파른 절벽을 깎아서 6차선으로 만든 길이 하루 종일 질리도록 이어진다. 속도 내기 좋은 로드사이클 기종이라면 인생 최고속도와 거리, 획득고도를 만들 수 있는 멋진 길이다. 그러나 이틀 연속 바다만 봤더니 파도며 바위며 물이랑 구름도 질리고, 야자수 낭만길도 시큰둥하다.

우링은 못 갔지만 뭔가 좀 넘었다 싶은 가파른 산악도로 라이딩을 해 봐야겠다. 중간 중간 사람들에게 물어봤던 길과 스마트폰 지도를 확대해서 멋진 산길을 발견했다. 중간에 관공서라고 표기되어 있으니 마을도 있을 것이기에 오늘 야영은 그 마을에서 할 요량으로 들어섰다. 그래도 혹시 몰라 저녁과 아침 먹을거리를 넉넉히 사서 챙겼다.

산악도로는 잘되어 있었다. 왕래하는 차량도 심심치 않고 마주 넘어오는 바이커도 두엇 만났다. 그런데 산이 크고 깊다. 정상에서 바로 내려가지 않고 능선을 달리는 듯 계속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 날은 어두워지고 차량 왕래도 거의 끊겼다. 아뿔싸, 관공서라고 표시되어 있던 곳은 문이 잠긴 산림관리 사무소였다. 마을처럼 보이던 건물 역시 문 닫은 수련원이다.

길가의 가로수가 휘어진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상당한 바람이 불었다. 다행히 등을 밀어주는 뒷바람이라 주행능력이 세 배는 증가했다.
웅장하게 펼쳐진 산맥을 감상하라는 전망대 데크엔 어지러운 바람이 강해서 텐트도 칠 수 없고 안부 쪽에는 짐승들이 나올 것 같다. 이 큰 산 속에서 연약한 우리 둘이 야영하기엔 좀 무섭다. 그저 끝까지 달리는 수밖에 없겠다.

최대한 맨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때까지 라이트를 켜지 않고 달렸다. 라이트를 켠 순간부터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속도가 줄어들고 멈칫거려지고 팔에 힘이 실려 핸들 조향이 부자연스러워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산악도로 포장 상태가 워낙 훌륭해서 도로 경계선의 흰색만 따라가도 된다. 어둠이 깊어져 결국 헤드랜턴까지 켜고 달린다. 다행히 내리막이 이어진다. 말 한마디 없이 안전 간격을 유지하고 40여 분을 내려오고 나니 마을 가까이 내려왔음을 알리는 축대, 빈집, 문 닫은 식당 등이 나온다.

산간마을 외진 도로. 바다와 산을 두루 달릴 수 있어 좋았다.
결국 널찍한 마을 광장에 닿았다. 공공건물인 듯한 모양의 건물 간판을 보니 동사무소 겸 주민체력단련실이다. 옆 공유자전거 주차장에 바람을 막아줄 지붕과 벽이 있는 넓은 자리도 있어 텐트를 치고 산을 빠져나온 안도감에 코까지 골면서 잤다.

이제 얌전하게 좋은 길로 가야겠다. 그래도 지도를 확대해 보니 숲속 오솔길처럼 지름길이 있다. 새벽 일찍 나서서 중간에 커피를 끓이고 고구마로 아침식사를 했다. 날씨도 여행 중 최고로 맑은 날이다. 이런 날이면 산도 달릴 수 있겠다싶어 10km쯤 되는 산길을 산보삼아 달린다.

지금까지 해안도로가 바다를 멀찌감치 두고 고속도로처럼 달렸다면 오늘부터는 바다 바로 옆을 달린다. 지나가던 군인들이 차를 멈추고 코스 점검까지 해주었다. 이 길로 계속 가면 심한 오르막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길 옆 산에서는 원숭이들이 시끄럽다.

대만의 동쪽 바다인 필리핀해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편의점 하나 없는 길에서 어촌마을의 유일한 식당을 만났다. 여기서 대만 여행 중 가장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밥 위에 고기, 호박, 가지, 버섯과 이름 모를 채소를 볶아 달걀프라이와 함께 얹어주는데 외국음식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입맛에 착 감긴다.

남쪽 끝 컨딩이라는 휴양 도시는 또 다른 느낌이다. 상가와 야시장 같은 생활구역을 벗어나면 국립공원이 있고, 해변에서는 서핑과 요트를 즐기는 이들이 보인다. 건물도 바닷가 도시의 전형인 희고 푸른색이 많아서 따뜻한 남쪽 햇살과 함께 쉬고 싶은 느낌이다.

가장 남단의 캠핑장을 찾아 가려는데 로드사이클을 타는 한 무리가 지나간다. 캠핑장을 물어보며 슬쩍 그 뒤로 붙어 함께 달렸다. 나나 윤희나 우리 동네에서 로드사이클로 그리 밀리지 않는 실력이기에 그 팀의 초보인 듯한 두 명이 우리 뒤로 쳐졌다. 나라 불문, 장소 불문 자덕의 자존심인 경쟁구도는 언제나 존재한다.

대만 최남단에서 함께 달린 로드사이클팀. 내 카메라를 달라고 하더니 이렇게 멋지게 셀카를 찍었다.
코리아에서 왔다는 소개만으로도 화제 만발이다. 봄에 부산에 갈 것이라는 아가씨는 한국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특히 '태양의 후예'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실제로 결혼했다가 이혼한 사실까지 알고 있다.

미니벨로로 로드사이클 제치기

저기가 캠핑장이라고 알려주는데 조금 놀랬다. '노영구'라는 한자 간판만 있고 공터 한쪽으로 벽과 지붕만 있는 가건물이다. 우리가 찾으려 했다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동호회 친구들 덕분에 수월해졌다.

우리가 상상했던 남쪽나라의 낭만적인 캠핑장은 아니지만 온수 나오는 샤워장이 있었다. 게다가 주인이 제공하는 은박매트 여러 겹을 깔고 벽을 의지해서 지붕 아래 텐트를 치니 잠자리가 아늑해졌다. 한 사람당 1만5,000원 지불할 가치는 있었다.

치진섬 해수욕장의 야영. 다 좋았는데 방심하다가 모기에게 20방은 물린 것 같다.
텐트에서 자는 여행이 처음인 윤희는 장비가 부실해 텐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로 인해 힘들어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집 옥상에서 예행연습 좀 하라고 했건만, 이리 되었다. 첫날 캠핑에서 종이박스를 밑에 깔라고 알려 주었더니 그 후 박스에 대해 간절한 집착을 보인다. "박스를 가지고 다니고 싶다"는 그녀, 맨바닥에서 잤을 때 어지간히 추웠나보다.

새벽에 땅끝 표시 구조물이 있는 지점까지 갔다가 서쪽으로 돌아 타이베이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대만은 도시와 인구, 산업 대부분이 서쪽에 몰려 있다. 그래서 길도 넓고 차량 왕래도 많아서 공기가 좋지 않다. 변함없이 고마운 건 더 넓어진 2륜차 전용도로다.

대만을 한 바퀴 도는 데 자전거로 9일 정도 잡는다. 우리는 7일의 라이딩 시간을 갖고 있기에 공항을 향해 가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기차로 점프해야 한다. 가오슝이라는 대도시에 붙은 치진이라는 작은 섬이 눈에 들어온다.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기 때문에 캠핑장이 있을 것이고 해산물 식당이 밀집해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새벽산책 나온 치진섬 주민, 형광색 삼총사의 유쾌한 만남이다.
서쪽 해안과 산업도로를 얼기설기 이어 달리자 대만의 산업이 어렴풋이나마 보인다. 거대한 공장지대와 바다에 연한 양식장들. 그 규모가 상당하다. 우리나라 슈퍼마켓의 메이드 인 타이완 제품의 고향을 목격한다.

아침 일찍 지나는 소도시 도시락 파는 가게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수많은 스쿠터의 이동. 대만 사람들의 호흡처럼 함께하는 종교의식과 작은 개인 제단들. 이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새해를 하루 앞두고 바오슝이라는 고장을 지나는데 4km나 이어지는 긴 행렬을 만났다. 30~40명 단위로 특색 있게 사자탈 놀음, 용춤 분장, 말 탄 무사 행렬, 경통을 돌리는 승려와 꽃마차, 빗자루로 길을 쓰는 의식… 내가 알고 있는 종교와 민족 신앙을 다 볼 수 있었다. 다양한 퍼포먼스 행렬은 짐작컨데 여러 마을이 모여 축제를 하는 것 같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게 좀 안됐다.

기차나 전철을 탈 때면 자전거를 접어 포장한 후 모든 짐을 들거나 메고 이동해야 한다. 타이난 기차역에서는 한 소년이 자전거짐을 옮겨 주었다. 땡큐, 타이완.
큰길보다 작은 길로 코스를 잡아 마을들을 지나며 보니, 낡은 건물이 많다. 대만이 처음이었을 때가 언제였을까 궁금해졌다. 간판도 오래된 것이 많은데 한자의 아름다움을 작품처럼 감상한다. 주인이 손수 만든 간판, 수려하지 않지만 담백하게 쓴 한자도 예쁘고 좋다.

하룻밤 자고 저녁을 먹기 위해 페리를 타고 들어온 치진섬. 요금 1,600원에 5분이면 들어온다. 그림처럼 예쁘게 꾸며놓았지만 워낙 작은 해수욕장 정도라서 관광객들은 이 섬에 머물지 않고 저녁이면 모두 섬 밖으로 나간다.

해수욕장 운영사무실 처마 아래 텐트를 쳤다. 잘 꾸며진 낙조의 바다공원이 우리집 거실로 변한다. 제대로 된 요리 좀 먹어보자고 식당에 들어갔지만 입 짧고 양 적은 우리는 4접시로 만족한다. 옆 테이블 가족을 보니 여섯 명이 15가지 요리를 먹는다.

무거운 짐을 메고, 지치지 않고 마음껏 겨울 훈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만의 친절한 도로와 적당한 때에 나타나는 편의점과 훌륭한 음식 덕분이다. 지도를 보면서 무언가를 물어볼 때 기꺼이 함께 고민해 주는 대만 사람들이 참 고맙다.

오토바이로 우리를 데리고 캠핑 장소를 함께 찾아준 해양경찰의 미소도 좋았다. 심지어 대만은 길거리 개들도 온순하다. 따라오지도 않고 짖지도 않는다. 너무 순하고 경계심이 없어 길에 누워 있다가 부상당한 개나 고양이를 많이 봤다.

타이난에서 우리의 라이딩은 끝났다. 자전거를 접어 기차와 전철을 타고 곧바로 공항으로 간다. 대만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자전거를 반드시 포장해야 한다. 기차 출발 시간 10분 전에 자전거를 접고 포장한 뒤 짐을 챙겨 뛰었다. 내려서 펴고 이동하고 또 접고 포장하고… 배낭과 자전거와 내가 한 몸이 되어 지낸 9일 동안 배는 쏙 들어가고 팔다리는 단단해졌다.

귀국 후 윤희는 매일 실내 롤러 라이딩을 1시간 이상 하고 주말엔 롤러로 100km를 탄다. 쾌적한 여행을 위해 몸을 어떻게 만들어 놓아야 하는지, 대만 여행에서 절실히 느낀 것 같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