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투하지’ 원래 교토였다[세기의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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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원자폭탄 공격을 예정했던 곳은 나가사키가 아닌 교토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원자폭탄 공격을 예정했던 곳은 나가사키가 아닌 교토였다.


일본 교토는 세계인이 방문하는 인기 관광 명소입니다. 금각사, 은각사, 기요미즈데라, 후시미이나리 등 교토에는 총 17개의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정취가 살아있는 교토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즐거운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교토가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의 끝을 알리는 원폭 공격 후보지였던 사실 알고 계셨나요? 교토는 한 사람이 쓴 손글씨 하나로 핵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게 됩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일본에 두 개의 원자폭탄을 던집니다. 1945년 8월 6일 리틀 보이 폭탄은 히로시마에 떨어뜨렸고 8월 9일에는 팻 맨 폭탄을 나가사키에 떨어뜨렸습니다. 이 폭탄은 약 20만 명의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도시는 황무지가 되었고 히로히토 일왕은 일주일 후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교토 금각사.
교토 금각사.


애초에 미국은 일본의 ‘높은 전략적 가치’를 가진 도시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고자 했습니다. 핵무기의 파괴 능력을 최대치로 이용하기 위해서였죠. 또한 대규모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를 유력지로 꼽았습니다. 그래서 잠재적으로 선택된 일본의 도시가 히로시마, 니가타, 고쿠라 그리고 교토였습니다.

나가사키는 미쓰비시 우라카미 어뢰 군수 공장과 미쓰비시 철강 무기 공장이 있으며 항구에는 일본 해군의 조선소가 있다는 이유로 물망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지형적으로 언덕이 많아 원자폭탄 폭발의 효과를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포로수용소가 있다는 점을 들어 최종 후보지에 들지 않은 터였습니다.

미 국방장관 헨리 스팀슨의 손글씨 하나로 교토의 운명이 바뀌었다.
미 국방장관 헨리 스팀슨의 손글씨 하나로 교토의 운명이 바뀌었다.


반면 교토는 군사 시설이 전무하지만 1868년부터 천 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던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시입니다. 미군은 이곳을 처참히 파괴함으로 일본의 제국주의 열망을 꺾어보자는 의도로 교토를 유력 후보지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교토의 파괴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미 국방장관 헨리 스팀슨입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피에 따르면 스팀스 장관은 공격 후보지를 결정하는 며칠 전 개인적인 의견을 담아 교토를 대상 목록에서 제거했습니다. 그가 후보 리스트에 직접 작성한 손글씨로 “교토 대신 나가사키로(and Nagasaki instead of Kyoto)”라고 적은 것입니다. 그 순간 교토는 살아남게 됐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스팀슨은 1920년 이미 교토를 방문한 적이 있고 심지어 자신의 신혼 여행지로 삼을 정도로 교토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전쟁의 상흔을 지우고 대도시로 재건됐습니다. 히로시마는 제조업의 도시가 됐으며 나가사키는 아름다운 해안을 품은 관광도시가 됐습니다. 전쟁의 흔적이라고는 평화 기념 공원이나 추모비를 찾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만약 나가사키 대신 교토가 핵무기로 초토화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교토는 한 사람의 손글씨 메모 하나로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그 덕에 아름다운 유적지는 보존이 가능해졌습니다만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국인 우리는 아름다운 교토의 풍경을 보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되긴 합니다.

■자료제공: 유튜브 채널 <지식 아닌 지식>

지식 아닌 지식
역사의 뒤안길 인물을 조명합니다. 매주 토,일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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