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에게 없는 것은 ○○○이다? ‘조커’①[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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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한 편의 영화를 두고 정신분석학적 시각과 정신의학 이론을 토대로 다각도로 분석해 보는 코너입니다.]

<조커> 공식포스터


광대 일을 하는 아서는 불량배 아이들에게 광고판을 빼앗기고 집단 폭행을 당한다.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린아이한테 장난을 쳤다가 핀잔을 듣는다. 집으로 돌아와 쇠약한 엄마를 챙겨준 뒤 함께 머레이 쇼를 보면서 자신이 그 쇼에 출연하는 상상에 빠진다. 다음날 회사 탈의실에서 동료가 어제 소식을 들었다며 아서에게 권총을 준다. 사장한테 불려간 아서는 파손된 광고판 값을 물어내라는 꾸중을 듣고는 뒷골목으로 나와 화풀이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여자를 만나 호감을 느낀다.
아동병원 위문 공연 도중 실수로 권총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아서는 회사에서 잘린다. 그날 지하철 안에서 여자 승객을 희롱하는 남자 셋과 시비가 붙어 홧김에 그들을 총으로 쏴 죽인다. 펍에서 성공적으로 코미디 쇼를 하고는 옆집 여자와 데이트를 즐긴다. 엄마로부터 사실 토머스 웨인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비밀을 듣고는 저택을 찾아가고 급기야 웨인을 직접 만나기까지 하지만 그건 모두 망상일 뿐이라는 답변만 듣는다. 엄마가 입원했던 정신병원의 기록을 통해 심지어 자신은 입양되고 학대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옆집 여자와의 데이트 또한 자신의 환상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아서는 병원에 입원해있던 엄마를 살해하고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동료도 죽인 뒤 생방송 도중 머레이를 쏴 죽인다.
아서의 이러한 행동은 명성을 얻어 군중들은 그와 같은 조커 얼굴의 탈을 쓰고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고, 그 와중에 웨인은 살해당한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서는 상담사와 대화를 나누고 나오는데 피가 묻은 발자국이 찍힌다.

윤병문 : <조커>를 다시 봤는데 진짜 명작이더라고요. 개봉했을 때 영화관에서 볼 때는 사실 유심히 보지 않고 그냥 쭉 봤어요. 한 사람이 저런 식으로 미쳐나가는구나, 범죄자가 되는 거구나 정도로요.

박성근 : 대부분 사람들도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비슷하게 말하더라고.

윤 :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 주인공 아서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를 너무 잘 묘사한 거예요. 일반적인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흥행한 거겠죠. 사실 명작이라는 게 이상한 범죄자 한 명을 그냥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줘야 하는 거니까요.

박 : 우린 정신과 의사니깐 일반적인 소감 정도보다는 좀 더 깊은 의견을 얘기해보는 게 좋겠는데….

윤 : 그럼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인간의 발달에 관한 정신의학적인 관점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태어나기 전인 엄마 배 속에 있을 때가 사실은 천국이잖아요. 그곳에서는 더운 거 추운 거 없고, 먹을 거 계속 제공되고, 마음대로 싸도 되고, 외부 충격에도 보호가 되죠. 그런데 그런 엄마 배 속에 있다가 이제 태어난단 말이에요. 근데 갓 태어난 아이는 아직 착각을 해요. 엄마랑 내가 하나인 것 같이 생각하죠. 비록 탯줄은 잘려서 끊겼지만 아주 어릴 때에는 배고프면 엄마가 먹을 거 주고 울면 달래주고…아이의 의식이 아직 명확하지 않으니까 마치 엄마랑 일체인 것 같죠.

박 : 물론 엄마라고 통칭하지만 그게 꼭 엄마가 아닌 경우도 있지. 어쨌든 날 늘 돌봐주는 사람, 주양육자한테도 아이는 비슷한 관념을 갖지.

<조커> 보도 스틸


윤 : 그러다가 아이가 좀 자라서, 인지가 발달하면서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죠. 엄마랑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엄마가 항상 옆에 있는 것도 아니에요. 더군다나 두세 살 정도가 되어보니 엄마 옆에 아빠가 있어, 아빠라는 존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해. 둘이 하나인 그런 관계를 원하는데 알고 봤더니 엄마를 차지한 건 아빠란 말이에요. 그럼 왜 아빠가 엄마를 차지했을까 생각해보니 아빠한테는 남근이 있는 거죠.

박 : 큰 성기는 힘의 상징처럼 보이는 거지.

윤 : 남근을 라틴어로는 팔루스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페니스고요. 그 팔루스가 내 거는 자그마한데, 엄마는 없고, 딸의 경우에도 없다고 봐야 하고, 암튼. 큰 팔루스를 가진 아빠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는 거죠. 그러면서 아이는 자신도 큰 팔루스를 가져야 엄마를 차지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는 건데, 그것이 꼭 큰 성기만을 뜻하는 건 아니고 힘과 권력 같은 게 자신한테도 생기길 바라죠.

박 : 지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에서 그렇게 상상을 하는 거지.

윤 : 아버지는 권위적인 상이잖아요. 규칙을 정하는 권위. 라캉 이론으로 얘기하자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징계에 들어온 것이라는 거죠. 다르게 이야기하면 거세된, 쾌락을 잃어버린 세계에 들어온 것이죠. 언어라는 게 명령이다 보니 ‘뭐는 해야 해, 어떤 거는 하면 안 돼’ 이런 식이 되는 거죠. 어렵게 얘기하면 아이는 거세된 존재라고 볼 수 있는 거고, 쉽게 말하자면 엄마를 차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거죠. 팔루스로 상징되는 무언가 말이죠.

박 : 아버지의 팔루스를 이길 만한, 팔루스 말고 뭔가 다른 것이 있어야 된다?

윤 : 팔루스라는 게 아까 말했듯이 꼭 성기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서 그것과 비슷한 것을 뜻하는 데 돈이나 인기 같은 것도 해당될 수 있죠. 동물의 세계에 비유하자면 힘과 인기를 쥔 대장 수컷이 모든 암컷을 차지하는 것과 같아요. 이런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조커>라는 영화를 해석해보면 아주 놀라워요.

박 : 그런 면에서 명작이라는 거지?

<조커> 보도 스틸


윤 : 영화 첫 장면을 보면 아서가 광대 분장을 하고 길거리에 나가서 광고판을 들고 춤을 추잖아요? 근데 여기서 인상적인 게 그 광고판 모양이 길쭉해요. 전 이게 팔루스랑 비슷하게 생겼다고 본 거예요. 그런데 그 광고판을 빼앗겨요. 어른도 아닌 애들한테 말이죠. 그러곤 그 애들 여러 명이 길쭉한 광고판을 갖고 장난을 치다가 부숴버리고는 아서를 때리죠. 애들한테 얻어터진 아서는 옆으로 쓰러져 무력한 모습을 보여요. 아서는 쉽게 말하면 거세된 거죠.

박 : 동네 애들한테 얻어터지기나 하는 거세된 어린아이란 말이지?

윤 : 그러는 이유는 뒤에서 나오지만 어렸을 적에 학대를 받으면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상징적으로 거세당한 상태인 데다가 그렇다고 아서한테는 능력이 있기를 해요? 돈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팔루스가 없는 사람이란 거죠. 아서가 생각하기에 팔루스를 손에 넣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거예요. 그게 코미디인 거죠. TV 쇼에 나가서 인기를 끌어야 하는데 그럴 능력도 없죠. 아서의 코미디는 재미가 없단 말이에요.

박 : 난 여기서 이 영화의 제목 <조커>가 아주 절묘하다고 생각해. ‘조커’라는 단어는 영어로 광대를 뜻하지만, 조크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거든. 실제로 TV쇼 진행자가 아서를 소개할 때 ‘joker’라는 표현을 쓰는데 번역은 익살꾼으로 나와. 그러니까 조커는 코미디언인 거지. 지금까지의 조커는, 특히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카드놀이에서 뭔가 변칙을 쓰는 패처럼, 사회 규칙을 어그러뜨리는 반칙 인물이기 때문에 조커였다면, 아서는 공감 가지 않는 조크를 일삼는 코미디언, 조커인 거지.

윤 : 이런 상황에서, 광고판을 뺏겼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동료 광대가 권총을 줘요. 좀 뜬금없어 보이죠. 이 권총이 바로 팔루스라는 거예요, 아서한테는. 고전적인 정신분석에서도 총은 페니스를 상징한다고 하잖아요? 농담으로 흔히 얘기하는 물총. 근데 이게 아주 힘이 있어요. 사람을 쏴 죽일 수도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진 권총. 아서는 이제 팔루스를 가진 거예요. 그러면서부터 망상이 시작되는 데 우선 옆집 여자와 관계가 좋아져요.

박 : 지금까지는 무기력해 보이거나 버스에서 어린아이한테 장난치는 모습이나 보였는데, 권총을 받고 난 뒤론 쓰레기 더미를 마구 걷어차고 화를 폭발하지. 그다음 시퀀스는 엘리베이터에서 옆집 여자와 마주치는 장면인데 여자가 장난스럽게 손가락으로 이마에 총 쏘는 시늉을 하니까 아서는 과장되고 너무 진지하게 그 시늉을 따라 해.

윤 : 그게 권총을 갖고 난 뒤니깐 그렇게 되는 거예요. 왜 또 하필이면 자신의 머리에다가 총을 쏘는 장난일까요? 과거의 내가 죽고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느낌인 거죠. 게다가 팔루스를 획득했으니 이제 아버지 같은 힘 있는 존재가 된 거잖아요? 옆집 여자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고요. 이건 아서의 어머니와 비슷한 입장이죠. 결국은 상상 속에서 엄마를 차지하는 게 되는 거예요.

박 : 나중에 망상이었던 것으로 밝혀지긴 하지만, 팔루스를 가지면서 그 여자를, 엄마를 갖게 된 거네?

윤 : 그런 성적인 코드는 이것만이 아니에요. 전철 살인 장면에서도 여자를 희롱하는 세 남자를 만나잖아요? 그 남자들은 비교적 젊고 돈도 많은 은행원이에요. 아서는 그들에 비하면 아주 무능하고 심지어 팔루스는 자기 것도 아닌 광고판인 데다가, 그것마저도 영화 초반부에 박살 나서 없어졌어요. 이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여자니까 아서한테는 엄마 비슷한 인물로 비칠 거고 오이디푸스적인 갈등이 폭발하면서 총으로 쏴 죽이죠. 이제 자기한테는 총이라는 힘이 있으니까.

박 : 처음처럼 맞고만 있지는 않네?

윤 : 그런 다음에는 이제부터 규칙과 법이 필요해지죠. 이런 거는 아버지의 영역이잖아요? 권력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금지된 상징계. 이때 엄마가 사실 너의 아버지는 토마스 웨인이라고 알려주잖아요? 유명인의 아들인 거지. 이게 잘하면 권력과 힘을 받을 수 있는 거죠. 엄마는 경제적으로 도와달라고 하는데, 아서는 내가 잘하면 그 아들이 돼서 나도 아버지 뒤를 잇는 것이고, 그것이 아서에게는 법과 질서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이라고 보면 되거든요. 그런데 웨인 저택에 찾아갔을 때 집사가 ‘네 엄마가 망상 환자’라고 해버리고, 웨인을 직접 만났을 때도 완전히 무시를 당하죠. 심지어 엄마의 정신병원 기록을 보니깐 자기가 엄마의 친아들도 아니야, 입양된 거지. 아서가 그나마 자기 행동을 절제하려던 방어선이 무너진 거고 웨인의 아들이 아니니깐 더 참을 필요가 없어진 거죠. 그러면서 폭력은 고담 도시 전체로 퍼지는 거예요.

박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셈이지.

<조커> 보도 스틸


윤 : 라캉식으로 표현하자면 상징계 차제가 무너지는 거죠. 법과 질서, 규칙 이런 거. 그러면 이제 죽음으로 넘어가는 건데…인간은 현실에 불만이 있으면 스스로를 파괴하고 태어나기 이전의 평온한 상태, 그러니까 흙으로 돌아가고 싶은, 죽음에 대한 근원적 충동, 즉 타나토스가 발동하게 되죠. 이런 것이 다른 사람들의 타나토스까지 자극하면 집단 파시즘이 되는 거예요. 군중은 히틀러 같은 한 명의 지도자가 필요하고 그 지도자는 하나의 상징이 되죠.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조커처럼 광대 탈을 쓰죠. 조커는 그 집단의 팔루스가 되는 거고 이때부터는 파괴가 되는 거예요. 조커 자체가 팔루스인 거죠.

박 : 세상뿐 아니라 조커 자신도 여러 살인들을 저지르잖아?

윤 : 영화 초반부에 아서가 한 조크 중에 자신이 코미디를 할 거라고 하니 엄마가 그보다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고 했잖아요? 엄마는 옛날부터 아서한테 공부를 해라, 늘 웃어라 이런 식으로 상징계의 규칙을 따르라고 명령했었던 거죠. 그동안 아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광대로 일하면서 엄마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것에 맞춰서 살았던 거예요. 이건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임을 보여주는 예이죠. 하지만 결국 아서는 타자인 엄마를 죽이고 이후로는 법과 규칙을 전혀 따르지 않은 채 자신의 욕망대로 행동해요. 자기 집에 찾아온 동료 중에 권총을 줬던, 덩치가 큰 사람은 팔루스를 가진 아버지 같은 인물이죠. 그 동료는 죽이는데 난쟁이 동료는 또 살려줘요. 꼭 자기처럼 힘없고 작은 존재라고 느껴져서인지도 모르죠. 그리고 토마스 웨인 외에 직접적으로 아서에게 아버지 같은 인물이 있는데 쇼프로 진행자 머레이예요.

박 : 초반에 상상 장면에서 머레이가 아서를 무대로 불러 ‘너 같은 아들을 가질 수 있다면’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지.

윤 : 그런 아버지 같은 머레이한테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게 아니라 도리어 조롱과 비난을 받으니까 참지 않고 생방송 중에 쏴 죽이죠. 마지막에 웨인은 아서가 직접 죽이는 건 아니지만 조커 가면을 쓴 대리인이 죽이고요. 이런 이야기는 성경이랑도 비슷해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들, 차에 부딪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죠. 게다가 성경의 오병이어랑 비슷하게, 이 영화에서 아서가 직접 살해한 사람이 하필이면 오남이녀예요. 전철 은행원 셋, 덩치 큰 광대 하나, 머레이 이렇게 해서 남자가 셋이고, 어머니랑 맨 마지막 정신병원 장면에서 살해한 걸로 추정되는 상담가 이렇게 여자 둘이요.

박 : 치밀하게 스토리를 잘 엮었어.

윤 : 인간의 마음속의 성적 본능인 리비도랑 죽음 본능인 타나토스는 단지 감추어져 있을 뿐이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지 우리 삶에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식으로 봤는데 형이 보시기엔 어땠어요?

박 : 나는 좀 다른 쪽으로 이야기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관심 있어 하는 건 도대체 조커는 무슨 정신병이냐는 거야. 윤 원장이 보기에 정신과적으로 진단을 내린다면 병명이 뭐일 거 같아?

조커의 병명은 이렇습니다…‘조커’②[영화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대화]에서 계속됩니다.

박성근과 윤병문은 정신과전문의이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를 하였고, 3년 선후배 사이로 같은 대학병원에서 정신과전문의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각각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구로점과 용인수지점의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한다. 네트워크 원장 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을 잡아 영화에 관해 수다를 떨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이 글이 쓰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