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포스코 장인화 회장 후보의 '매직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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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위 철강업 경쟁력 회복에 방점, 권영수 등 탈락
장인화 중임하면 70세 넘는 약점 불구 면접점수 앞서
국민연금 개입·경찰수사 없었다면 결과 달라졌을 수도
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CEO 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7~8일 파이널 리스트에 오른 6명의 회장 후보들에 대한 심층 면접을 대치동 포스코 사옥이 아닌 인재창조원 포스코이앤씨 등이 몰려 있는 인천 송도에서 진행했습니다. 후보 한 사람당 15분 정도 프레젠테이션을 먼저 하고 40분 정도 질의응답이 있었습니다. 주요 금융그룹의 경우 회장 후보 심층 면접에 2~3시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짧았습니다.

6명의 후보들에 대한 인터뷰가 짧게 진행되다 보니 8일 오후 임시이사회를 열어 장인화 전 포스코 사장을 10대 회장 후보로 발표합니다. 회장 선임 작업을 주도한 후추위는 "장인화 후보가 저탄소 시대에 대응하는 철강사업 부문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사업 부문의 본원적 경쟁력을 높이는 작업을 충분히 잘 수행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공식 밝혔습니다.

발표는 간단했지만 장인화 회장 후보 선임까지 후추위의 고민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6명의 내·외부 후보들 가운데 장인화 전 사장을 고른 데 대해 후추위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포스코의 최대 문제는 현재 주력인 철강부문이 아주 안좋은 것이다. 우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뽑았다." 철강부문의 경쟁력 회복이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했다면 당연히 6명의 후보군 중에서 몇몇 사람은 제외됩니다. 외부 출신 중에서는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과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내부에서는 재무·전략통인 전중선 전 포스코홀딩스 사장입니다.

그동안 유력 후보로 거명되던 권영수 전 LG 부회장이 탈락한 것에 대해 후추위 관계자는 "CEO만 5~6번 역임하는 등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철강사업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게 큰 약점"이라고 했습니다.

포스코홀딩스 차기 회장의 최우선 과제가 철강 경쟁력 회복이라면 이제 남은 후보는 우유철 전 현대제철 부회장과 내부 인사인 장인화 전 사장, 현직인 김지용 미래기술연구원장(사장)입니다. 이 가운데 우선 우유철 전 부회장이 제외됩니다. 철강 전문가이긴 하지만 포스코보다 작은 후발사 출신인데다 어수선한 조직을 추스르려면 내부 인사가 낫다는 판단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권영수 김동섭 우유철 등 3명의 외부 출신 후보는 모두 탈락합니다.

KT 포스코홀딩스 KT&G 등 소유분산 기업 CEO 인사와 관련 윤석열 정부의 한결같은 입장은 '내부 카르텔'을 깨라는 것이었고, 신중하기로 소문난 국민연금의 김태현 이사장이 직접 나서 외부 인사에게도 공정하게 기회를 주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전례 없이 6명의 파이널 후보 중 외부 인사를 3명까지 배려했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외부 출신 후보들의 탈락은 포스코홀딩스 이사회가 국민연금의 압박과 '호화 이사회'에 대한 경찰 수사 등에도 불구하고 KT와 달리 한 사람의 사외이사 교체 없이 꿋꿋하게 회장 후보 선임 작업을 진행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 KT는 국민연금 8.3%, 현대자동차 7.8%, 신한은행 5.6% 등으로 국민연금과 정부 영향을 받는 국내 기관들이 힘을 합치면 회장 후보를 비토할 수 있지만 포스코는 국민연금 6.71%를 제외하면 소액주주들이 75%여서 국민연금이나 정치권력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들은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온갖 압박에도 불구하고 버틴 것입니다. 실제로 후추위 관계자는 "이번 인선 과정에서 외부의 직접적인 개입이나 압력은 일체 없었다"고 말합니다.

포스코맨들은 그동안 4대 김만제 회장을 제외하면 포스코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에게 회장 자리를 내준 적이 없고, 특히 2000년 민영화 이후로는 전무하다고 자랑합니다. 외부인 입장에서는 이것을 '철강 카르텔 또는 '포피아'(포스코+마피아)라고 비판하겠지만 내부 출신 우선 원칙이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경영학의 고전이 된 '굿 투 그레이트'(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외부에서 영입돼 들어온 명망가 리더들은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의 도약에 부정적 상관관계를 보인다. 위대한 회사를 키운 CEO 11명 중 10명은 회사 내부 출신이었다."

3명의 외부 인사가 탈락하고 내부지만 재무통인 전중선 전 사장이 빠지자 남은 사람은 장인화 전 사장과 현직인 김지용 사장입니다. 왜 후추위는 장인화 후보를 최종 선택했을까요. 이와 관련해 후추위 관계자는 이런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장 후보의 가장 큰 약점은 고령이라는 점이었다. 1955년생으로 만약 중임을 한다면 70세를 넘겨 버리는데 솔직히 걱정이 됐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면접을 해 보니 괜찮았고 점수도 높게 나왔다."

후추위 관계자의 고백처럼 장인화 회장 후보의 최대 약점이라면 단연 그가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70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너가 아니면 70을 넘겨 CEO직을 수행하는 일은 아주 드뭅니다. 일부 금융그룹의 경우 70세를 넘으면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지 못하도록 내부 규정을 둡니다. 포스코홀딩스 후추위가 나이까지 고민했다면 무려 7살이나 젊은 1962년생의 현직 김지용 사장을 선택하면 됩니다. 더욱이 김지용 사장은 철강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장인화 회장 후보가 조선해양공학을 전공한 '연구원 출신 철강맨'인데 비해 김지용 사장은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철강솔루션센터장과 광양제출소장을 역임한 '정통 철강맨'입니다.

후추위는 입을 다물지만 나이도 젊고 철강도 잘 아는 김지용 사장을 선택하지 않고 장인화 전 사장을 최종 선택한 데는 정치적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와 국민연금이 내부 카르텔 타파와 외부인 선호 시그널을 끊임없이 보내고, 내부 출신의 3명 후보는 물론 사외이사들까지 경찰 조사를 앞둔 상황에서 최정우 회장의 측근인 김지용 사장을 회장 후보로 선임하기는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못합니다. 포스코 일각에서는 이 점에서 후추위가 비겁했고 결국 타협하고 말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최정우 회장이 처음부터 3연임 포기를 선언하고 국민연금(정부)과 경찰의 개입이 없었다면 장인화 전 사장이 아닌 김지용 사장이 회장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늘 노력보다 운(運)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장인화 회장 후보에 대해서는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뛰어 앞으로 '포스코 패싱' 이슈를 해결할 적임자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합법적 절차를 거쳐 공정하게 선임된 사람을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사진 작가들에게는 '매직 타임'(Magic Time)이라는 게 있습니다. 하루 두 번, 해 뜰 때와 해 질 때 가장 아름다운 빛을 비추는 마법의 시간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장인화 포스코홀딩스 회장 후보는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70세가 되는 그야말로 인생 말년에, 바다에 잠기며 내뿜는 강렬하고 아름다운 낙조를 보여준 마법의 시간을 다시 맞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성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