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저래도 인플레이션, 기후의 매서운 역습 [스터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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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경제학 스터디카페
변종 인플레이션의 함의➋
기후플레이션과 그린플레이션
기후, 물가 자극 변수 중 하나
인류는 기후 역습에 대비해야
물가를 자극하는 변수 중 가장 복잡한 건 기후다. 기후 위기도, 기후를 지키려는 친환경 정책도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수 있어서다. 가령, 기후가 너무 춥거나 더우면 농산물의 작황에 영향을 미쳐 물가가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선 에너지 비용이 상승하는 경우가 잦다. 더스쿠프 '경제학 스터디카페'에서 기후플레이션과 그린플레이션의 함의를 살펴봤다.

기후는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는 복잡한 변수 중 하나다.[사진=뉴시스]


스티키인플레이션(Stickyinflation)은 물가가 좀처럼 하락하지 않는 현상을 의미한다. '스티키'의 뜻을 직역하면 '끈적끈적하다'다. 물가가 끈적끈적하게 천장에 달라붙어 내려오지 않는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스티키인플레이션은 미국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하는 '스티키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유래했다. 스티키 CPI는 상대적으로 낮은 변동성을 가진 재화와 서비스에 가중치를 부여해 집계하는 통계다. 역사적으로 잘 오르지 않던 제품마저 변동성이 높아졌다는 건 그만큼 물가상승세가 심상치 않다는 걸 의미하는데, 지난해 이 지표가 크게 요동치면서 긴장감을 부추겼다. 

지금도 세계 주요국의 높은 물가는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는 '큰 칼(기준금리 인상)'을 뽑아들었지만, 고물가 국면은 여전하다. 한국도 그렇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물가둔화세를 점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8월 3.4%, 9월 3.7%를 기록한 이후 10월엔 3.8%까지 치솟았다.

중동 지역에서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 터지면서 국제유가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데다, 기후위기 탓에 농산물 가격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물가상승률은 3.2%를 기록하면서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3%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물가는 수요-공급, 지정학적 위기, 기후 등 숱한 변수에 영향을 받는다. 이중에서 가장 복잡한 변수는 기후다. 

■ 변종인플레-기후의 역설 = 기후는 물가에 '두가지 측면'에서 영향을 준다. 첫째는 농수산물의 공급량을 좌우하는 기후 위기다(기후플레이션ㆍClimateflation). 기후가 너무 춥거나 더우면 작황이 줄어 가격이 뛸 수밖에 없다.

둘째는 아이러니하게도 '친환경'이다. 정부나 기업이 친환경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나 원자재 가격이 오른다는 건데, 경제학자들은 이를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라고 일컫는다.  



최근의 그린플레이션을 엿볼 수 있는 건 구리 가격이다. 씨티은행은 2025년 구리 가격이 톤(t)당 1만50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t당 8000달러 안팎에서 거래 중인 가격이 내년쯤엔 두배 가량 오를 거란 얘기다. 

씨티은행이 이런 전망을 내놓은 건 탈탄소 에너지 전환 시대엔 구리가 필수 요소로 쓰여서다. 예컨대, 전기차 한 대를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구리의 양은 80㎏을 웃돈다.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4배가량 많다. 전력망, 풍력발전소 터빈 등 친환경 에너지 설비를 제조할 때도 구리는 필수 원자재로 쓰인다. 이 설비들의 수요가 늘어날수록 구리 가격이 오르는 건 경제학적 수순이다. 씨티은행은 2030년까지 구리 수요가 420만t 더 늘어날 것으로 판단했다. 

전기차 배터리와 태양광 패널의 주요 원자재인 알루미늄 가격도 마찬가지다. 전기차ㆍ태양광 산업이 커질수록 알루미늄의 가격도 급등할 공산이 크다. 다만, 여기엔 중국이란 변수도 끼어 있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국 중국은 '탄소중립 정책'을 이유로 알루미늄 생산을 줄이고 있다. 알루미늄을 생산하려면 대량의 전기가 필요한데, 중국은 석탄 발전으로 전기를 주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알루미늄 가격이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치솟을 수도 있다. 

이같은 친환경 정책은 미래를 위한 필연적 선택이지만, 여기서 수반하는 '그린플레이션'은 소비자에게 달갑지 않을지 모른다. 실제로 세계 각국이 친환경과 탈탄소 정책을 꾀하면서 오르는 물가를 향한 소비자의 반발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영국에서 벌어진 '시위'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8월 런던에서 '노후 공해차'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초저배출구역(ULEZ)'을 확대 시행했다. 2005년 이전에 제조한 가솔린 엔진차와 2015년 이전에 만든 디젤 엔진차는 ULEZ에 진입할 때 하루에 우리나라 돈으로 약 2만원을 지불하도록 했다. 이 정책에 반발한 일부 시위대는 차량 감시 카메라 400여대를 파괴하는 등 극한 행동을 보였다. 

고물가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시민들의 지갑이 닫히고 있다.[사진=뉴시스]


영국만이 아니다. 스웨덴 정부는 2030년부터 내연기관차를 판매할 수 없는 정책을 수립했는데, 이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47.0 %)은 찬성 여론(42.0%)보다 5%포인트 우세했다. 미국에선 기후 위기 대응을 마땅치 않게 여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했고, 독일에선 과도한 기후 대응 정책에 반대하는 독일을위한대안당(AfD)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린플레이션을 감수하더라도 친환경 정책을 더 혁신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후위기가 지금보다 더 심각해지면, 인류는 기후플레이션의 습격을 받을 게 분명해서다. 이러나저러나 인류는 기후의 역습에 대비해야 한다는 거다.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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